팔라우에서 아직도 미스터 킴을 묻는 이유
팔라우 펠렐리우섬에서 한국인 여행자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두유 노 미스터 킴(Do you know Mr. Kim)?
여행신문의 현지 취재에 따르면, 이 질문은 2003년 KBS 인간극장에 소개된 김정곤 씨를 가리킨다. 김 씨는 방송 뒤 ‘펠렐리우 킴’으로 불렸고, 사망한 뒤에도 아내와 가족, 이름이 섬에 남아 있다.
이름이 아직 섬에 남았다.
23년 전 방송 속 인물의 현재
김정곤 씨는 1970년대 원양어선 선원으로 팔라우에 왔다. 이후 현지 여성 마지(Margie)와 결혼하고 펠렐리우에 정착했다. 그의 삶은 2003년 KBS 인간극장 ‘팔라우의 미스터 김’을 통해 한국에 소개됐다.
방송으로부터 23년이 지난 2026년, 여행신문은 펠렐리우섬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에서 김 씨의 아내 마지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김 씨는 3년 전 사망했지만, 마지는 여전히 펠렐리우에서 생활하고 있다. 부부에게는 자녀 3명이 있다.
마지는 취재진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짧은 인사였지만, 오래된 방송 속 인물이 가족의 삶과 함께 현재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방송은 끝났지만, 기억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김 씨의 정확한 사망일과 사망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2003년 방송의 정확한 방영일과 회차 구성도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사 일부 역시 추가 검증이 필요한 내용이다.
펠렐리우에 겹쳐 있는 전쟁의 역사
펠렐리우는 김정곤 씨의 정착 이야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섬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이 격전을 벌였고, 비행장과 동굴 진지, 전차와 대포 등 전쟁 유적이 남아 있다.
미 해군 역사·유산사령부는 펠렐리우 전투가 1944년 9월 15일부터 11월 27일까지 이어졌다고 기록한다. 미군 사상자는 1,544명 전사, 6,843명 부상에 이르렀고, 일본군은 nearly 11,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펠렐리우의 전쟁 유적은 관광 자원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죽고 다친 현장이다.
유적은 볼거리보다 먼저 역사다.
조선인 강제동원도 남아 있다
한국인에게 펠렐리우는 미군과 일본군이 싸운 장소만은 아니다. 일본 통치기 조선인 노무자와 군무원이 동원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일본 패전 뒤 팔라우에서 귀환한 조선인을 노무자 2,765명과 군무원 589명 등 3,354명으로 파악한다. 다만 누락 인원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연구에 따르면, 1944년 팔라우에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 334명 가운데 15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서 두 숫자 범위는 다르다. 3,354명은 패전 뒤 귀환자 전체 추정치이고, 334명과 151명은 1944년 특정 노무자 동원 사례를 다룬 수치다.
숫자를 섞으면 기억도 흐려진다.
왜 현지에서 한국인에게 묻는가
현지 가이드가 한국인 여행자에게 “두유 노 미스터 킴?”이라고 묻는 까닭은 김정곤 씨가 펠렐리우 킴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섬과 한국을 잇는 작은 표지처럼 남아 있다.
김 씨는 강제동원 피해자와는 다른 시대에 팔라우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한국인이 이 섬에 어떤 경로로 왔고,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개인의 이주사가 더 오래되고 아픈 역사로 이어지는 셈이다.
다만 ‘펠렐리우 킴’이라는 호칭이 섬 주민 전체에서 통용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인 방문객마다 이 질문을 받는다는 인상도 정량적 조사 결과는 아니다. 확인된 사실은 현지 취재에서 실제 질문이 나왔고, 김 씨의 아내와 가족이 지금도 섬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미스터 킴은 한 사람의 이름이다.
전쟁 유적을 찾는 여행자의 안전
펠렐리우의 전쟁 유적을 찾는다면 역사만큼 안전도 살펴야 한다. 미국 국무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불발탄이 남아 있다며 알려진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라고 안내한다.
방문객은 안전한 동선과 현지 가이드를 이용해야 한다. 가이드 없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으로 들어가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일본 외무성 주팔라우대사관은 펠렐리우 세계대전기념박물관의 보수와 전시 정비가 2024년 재개관을 앞두고 진행됐다고 밝혔다. 박물관과 유적을 찾는 일은 전쟁의 흔적을 이해하는 기회지만, 한 가족의 삶이나 피해의 역사를 구경거리로 다뤄서는 안 된다.
감동보다 먼저 안전이다.
미스터 킴이라는 질문이 남기는 것
팔라우 현지에서 듣는 미스터 킴은 단순한 인물 퀴즈가 아니다. 김정곤 씨의 정착, 마지와 가족의 현재, 펠렐리우의 전쟁 유적,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가 한 질문 안에 겹쳐 있다.
김 씨의 정확한 사망일과 사망 원인, 방송의 세부 내용, 호칭의 지역적 범위는 더 확인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감동으로 채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도 질문의 의미는 분명하다. 현지 가이드가 한국인 여행자에게 미스터 킴을 묻는 것은, 김정곤 씨의 이름과 가족의 기억이 지금도 펠렐리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팔라우에 남은 한국사의 입구다.
자주 묻는 질문
왜 팔라우 현지인들은 한국인 여행자에게 미스터 킴을 아느냐고 묻나요?
김정곤 씨가 1970년대 팔라우에 정착했고, 2003년 KBS 인간극장 ‘팔라우의 미스터 김’에 소개된 뒤 펠렐리우 킴으로 기억됐기 때문입니다. 김 씨가 사망한 뒤에도 아내 마지와 가족, 그의 이름이 섬에 남아 있습니다.
김정곤 씨는 언제 사망했나요?
아내 마지는 김정곤 씨가 3년 전 사망했다고 말했지만, 정확한 사망일과 사망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팔라우에 동원된 조선인은 얼마나 되나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패전 뒤 팔라우에서 귀환한 조선인을 노무자 2,765명과 군무원 589명 등 3,354명으로 파악합니다. 누락 인원이 있을 수 있는 추정치입니다. 별도로 1944년 동원 노무자 334명 가운데 15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펠렐리우 전쟁 유적은 혼자 둘러봐도 되나요?
미국 국무부는 불발탄이 남아 있어 알려진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라고 안내합니다. 방문객은 안전한 동선과 현지 가이드를 이용해야 합니다.
2003년 인간극장 방송의 정확한 방영일을 알 수 있나요?
김정곤 씨의 삶이 2003년 KBS 인간극장 ‘팔라우의 미스터 김’으로 소개됐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정확한 방영일과 회차 구성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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