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2026년 10월 16일 (금)

LUXDIGEST

심층분석뉴스

25년 닫혔던 ‘그린 헬’, 하필 지금 문 연 이유

25년 만에 부활한 미 육군 정글 탭, 그 배경엔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중 신경전과 미군 재주둔 논란이 있다. 배지 하나에 숨은 지정학을 읽는다.

파나마 크리스토발 콜론 기지에서 정글작전훈련과정 졸업식을 치르는 미군 및 파나마군 교육생들
사진: 미 해병대 · Lance Cpl. Brian Bolin Jr

살 빠져야 받는 배지

“체중이 두 자릿수(파운드) 이상 빠지지 않은 학생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졸업할 때쯤엔 지나치게 말라 있다.” 파나마 정글작전훈련과정(Jungle Operations Training Course-Panama, JOTC-P) 책임장교 에이건 중령의 말이다. 완전군장으로 밀림 5km를 40분 안에 뛰어야 통과하는 이 과정의 초기 3개 기수 통과율은 45~55%에 그쳤다. 몸무게가 아니라 자격을 얻는 자리인데, 결과물은 몸무게부터 바뀐다.

미 육군이 이 과정 수료자에게 주던 ‘정글 탭’을 이제 전군 누구나 제복에 달 수 있는 정식 특기 배지로 승인했다. 1990년대 포트 셔먼에서 과정을 마친 퇴역·예비역, 셔먼 폐쇄 이후 하와이에서 수료한 이들까지 소급 적용된다. 패치 하나의 정규직 전환치고는 절차가 꽤 거창하다. 25년간 닫혀 있던 파나마 운하 대서양 입구의 옛 포트 셔먼, 지금의 크리스토발 콜론 해공군기지(Base Aeronaval Cristóbal Colón)에서 2025년 과정이 재개된 지 1년 만의 일이다.

정글 탭은 제복 서열에서 새퍼 탭 다음, 프레지던트 헌드레드 탭 앞자리를 차지한다. 작은 자리지만 상징은 작지 않다. 이 배지가 부활한 시점이 트럼프 행정부의 파나마 운하 재장악 시도, 그리고 미·파나마 안보협력 확대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타이밍이 말해주는 것

겉으로 보면 이번 사안은 인사행정이다. 교육과정 하나를 표준화하고, 거기에 맞는 배지 규정을 정비했을 뿐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 변화는 단독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조치가 몰려 있는 흐름의 끝자락에 가깝다.

2025년 1월 1기갑여단전투단 소속이던 부대가 육군안보협력단-남부(Army Security Cooperation Group-South, ASCG-S)로 재편되며 파나마 과정 운영 임무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파나마와 안보 양해각서에 서명해 옛 미군기지 순환배치 길을 열었다. 8월 JOTC-P가 재건됐고, 12월 미 육군 포스컴(US Army Forces Command, FORSCOM)이 해체되며 육군 서반구사령부(US Army Western Hemisphere Command)가 신설됐다. 그리고 2026년 7월, 정글 탭 전군 착용이 승인됐다.

이 조치들을 각각 떼어 보면 우연의 연속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1년 반 사이에 이만큼 조밀하게 늘어서 있다면, 우연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조직 개편 캘린더로 읽는 편이 합리적이다. 다만 이 연쇄가 실제로 사전에 조율된 전략인지, 아니면 각 부서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다 결과적으로 겹친 것인지는 공개된 자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파나마 크리스토발 콜론 기지에서 정글작전훈련과정 졸업식을 치르는 미군 및 파나마군 교육생들
사진: 미 육군

배지는 기지보다 부드럽다

파나마 무리노 대통령은 미군 자체 기지 설치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1977년 토리호스-카터 조약과 자국 헌법의 외국군 기지 금지 조항이 있는 나라에서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같은 대통령이 합동훈련과 순환배치는 받아들였다. 정식 기지는 안 되지만, 훈련은 된다는 구분선이다.

이 구분선 위에 정글 탭이 정확히 걸터앉아 있다. JOTC-P는 미군 단독 과정이 아니라 파나마 보안군과의 합동 틀로 운영된다. 배지라는 연성 상징이, 주둔이라는 경성 이슈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는 완충재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군 기지 재설치는 거부당했지만, 옛 포트 셔먼 부지에서 양국 군이 함께 땀 흘리는 훈련은 조용히 자리 잡았다. 파나마 운하는 미국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40%, 세계 교역의 약 5%를 통과시키는 길목이다. 그 길목 옆에 깃발 대신 배지를 먼저 꽂은 셈이다.

정글 탭이 겨냥하는 건 밀림이 아니라 체류의 명분이다

나는 이번 조치의 실질적 기능이 밀림전 숙련도 확산보다 파나마 내 미군 존재의 정당화에 가깝다고 본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공개된 자료 어디에도 이 과정의 연간 교육 인원 목표치나 예산 규모가 나오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능력 재건이라면 규모를 밝히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 숫자가 비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업의 무게중심이 ‘능력’보다 ‘존재’에 있다는 정황이다. 둘째, 통과율이 초기 45~55%에서 현재 80% 이상으로 뛰었다. 난이도를 낮췄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과정이 소수 정예의 전투력 검증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인원에게 탭을 달아주는 쪽으로 운영 방향을 틀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숙련도 집약 과정이라면 통과율을 일부러 끌어올릴 이유가 없다. 제복 위에 달린 작은 패치는 들고 다니기 쉽고, 보여주기도 쉽다. 기지는 조약과 여론의 벽에 막히지만, 합동훈련과 배지는 그 벽을 돌아간다. 내 판단이 틀렸다면, 그건 이 과정이 실제로 필리핀 등 태평양 정글 지형 작전까지 염두에 둔 범용 전력 재건이고, 파나마는 단지 지리적으로 가장 적합한 훈련장이었을 뿐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가질 때일 것이다. 발리카탄 연습에 JOTC 교관이 파견된 사례가 있다는 점은 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게 한다.

지켜볼 것

  • 하워드 공군기지·로드먼 해군기지 등 옛 미군기지에 순환배치 병력이 실제로, 얼마나 투입되는지 — 2026년 말~2027년 사이 규모가 드러나면 이번 조치가 상징을 넘어선 실체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 파나마 내 반미·주권 여론이 다시 불붙는지 — 다음 정치 일정과 맞물려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고, 그 강도가 완충재 전략의 성패를 보여줄 것이다.
  • 정글 탭 신설이 산악·사막 등 다른 지역특화 스킬 탭 확산으로 이어지는지 — 향후 군복 착용 규정 개정판이 나오면, 이번 조치가 파나마에 국한된 예외인지 전군 차원의 패턴인지 판가름 난다.

이번 사안은 한반도 전력이나 방산 수출과 직접 맞닿아 있지 않다. 다만 미군의 무게중심이 서반구로 일부 쏠리는 흐름이 장기적으로 다른 지역 순환배치 우선순위에 영향을 줄지는, 지금으로선 가능성 이상으로 말하기 어렵다.

대표 사진 — 미 해병대 · Lance Cpl. Brian Bolin Jr
본문 사진 — 미 육군
미국 연방정부 저작물(퍼블릭 도메인)입니다. 미 국방부 시각자료의 사용이 국방부의 보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최성원 기자
Facebook X (Twitter)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