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하나에 딸려온 계약서 두 장
10월 12일 안두릴이 워싱턴 D.C.에서 꺼낸 건 요격미사일 카탈로그 한 장이 아니었다. 바로 전날 미 육군과 5년간 최대 18억 달러, 기본계약 1억6,280만 달러 규모의 차세대 지휘통제(NGC2) 확장 계약을 맺었고, 비슷한 시점에 버지니아급 잠수함 부품 제작을 위한 66억 달러 규모 조선 투자 계획까지 내놓았다. 그 사이에 끼어든 게 모듈형 지대공 요격미사일 ‘스틸핀(Steelfin)’ 패밀리였다. 미사일, 지휘통제, 조선소를 한 주에 묶어 던지는 회사는 흔치 않다. 안두릴이 팔고 있는 건 무기 한 종이 아니라 이 회사와 거래하면 모든 게 빨라진다는 인상 그 자체다.
스틸핀은 1단 부스터와 2단 종말요격체로 이뤄진 2단 구조로, 모든 변형이 동일한 기체·항공전자·소프트웨어·비행제어 시스템을 공유한다. 안두릴은 패트리엇 PAC-3 MSE(Patriot PAC-3 Missile Segment Enhancement) 임무용 변형이 PAC-3 MSE 성능의 80%를 절반 미만 가격에 수행하고, 상위급 변형은 사드(종말고고도지역방어체계, THAAD) 임무의 100%를 훨씬 낮은 비용으로 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M903A2 발사대, Mk 41 수직발사체계, 타이폰 체계(Typhon) 같은 기존 발사 인프라, 이지스(AEGIS)·통합전투지휘체계(IBCS) 같은 기존 교전통제 소프트웨어와도 호환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이 발표는 이란과의 전쟁으로 미군 방공망의 총알이 바닥을 보이는 시점에 나왔다. 패트리엇 재고의 약 65% 소진, 남은 수량 1,000발 미만, 사드 재고 약 38% 감소, 잔여 234~278발 추정 —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이다. 재고 복원에 최소 3년 소요 전망까지 나온 마당에, 가격과 물량을 동시에 내세운 신생업체의 제안은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숫자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가격표보다 흥미롭다.
발표 순서가 곧 메시지다
겉으로 보이는 건 신제품 공개다. 스틸핀은 미 육군협회(AUSA) 연례총회 첫날 공개됐다. 공교롭게도 사흘 전인 10월 9일 록히드마틴이 육군 퓨처 인터셉터 프로그램(Future Interceptor program)용 PAC-3 엣지(PAC-3 Edge)를 선보인 직후였고, 안두릴 자신의 18억 달러 규모 NGC2 계약 소식이 보도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다르다. 이건 우연한 겹침이 아니라 설계된 순서다. 방산 전시회의 신제품 공개는 기술 뉴스가 아니라 예산 시즌을 겨냥한 협상 카드에 가깝다. 록히드가 먼저 검증된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들고 나오자, 안두릴은 사흘 뒤 아예 다른 가격 체계로 맞받았다. 크리스 브로스 안두릴 사장 겸 최고전략책임자는 “우리 군과 동맹국 군은 확장성이 없고 직면한 위협의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레거시 요격미사일들로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의 실제 청자는 전장의 지휘관보다 의회 예산위원회에 가깝다고 나는 읽는다.
근거는 숫자에 있다. 록히드마틴은 2026년 7월 PAC-3 생산 확대를 위한 최대 586억 달러 규모 계약(록히드마틴, 2026년 7월)을 따내며 PAC-3 연간 생산량을 약 600발에서 2,000발로 증대하기로 했다. 안두릴이 연간 수천 발의 스틸핀 변형을 단기 목표로 내건 건 이 숫자를 정확히 겨냥한 설정이다. 둘 다 더 빨리, 더 많이 만든다는 같은 메시지를 서로 다른 가격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숫자는 사격장이 아니라 보도자료에서 태어났다
PAC-3 MSE 가격의 3분의 1, PAC-3 MSE 성능의 80%를 절반 미만 가격에 — 안두릴이 내놓은 숫자는 선명하다. 스티브 밀라노 안두릴 미사일 담당 수석 디렉터는 “사드 임무의 100%를 훨씬 낮은 비용으로 수행”한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이 수치들은 전부 목표치이지 측정치가 아니다. 안두릴은 대표 비행체를 이용한 탄도시험을 완료했을 뿐, 변형별 비행시험은 2027년에야 시작할 예정이다. 80% 성능이라는 숫자는 미사일이 실제로 뭔가를 맞혀보기도 전에 나온 숫자라는 뜻이다. 안두릴이 퓨처 인터셉터 프로그램이나 저비용 요격미사일 프로그램(Low-Cost Interceptor program)에 공식 선정됐는지에 대해서도 경영진은 논평을 거부했다.
참고로 현재 PAC-3 MSE 1발당 약 530만 달러(2027회계연도 예산 기준), 사드 요격미사일 1발당 약 1,550만 달러다. 안두릴 주장대로라면 이 가격표가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진다는 뜻인데, 로켓 모터 조달이 자체 생산인지 외부 공급업체 의존인지조차 매체마다 서술이 엇갈린다. 가격 경쟁력의 가장 기초적인 전제, 핵심 부품을 누가 공급하느냐조차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재고 고갈이라는 위기가 록히드마틴·레이시온 중심의 과점 구조에 안두릴 같은 신생기업이 끼어들 틈을 열어줬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그것이 실제 시장 재편으로 이어질지는 비행시험과 프로그램 선정 결과 이후에나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은 패트리엇과 L-SAM 등 요격체계를 함께 운용하는 나라지만, 스틸핀이 당장 한국의 방공 전력이나 수출 계약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다만 공통 아키텍처로 저가 대량생산한다는 접근은 한화·LIG넥스원이 해외 수출 시장에서 향후 비교당할 기준점이 될 수 있다 — 비행시험도 치르기 전인 지금은 가능성 수준의 이야기일 뿐이다.
안두릴이 쫓는 건 요격미사일 수주가 아니라 속도에 대한 신뢰다
내가 보기에 안두릴은 이번 주 스틸핀 공개로 요격미사일 시장 자체보다 더 큰 것을 노렸다. 바로 이 회사에 맡기면 빠르다는 내러티브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스틸핀의 핵심 세일즈 포인트는 성능이 아니라 공통 아키텍처다. 안두릴 보도자료는 “고정적이고 변화에 저항적인 설계를 가진 기존 미사일과 달리, 스틸핀은 각각 특정 임무에 맞게 구성 가능한 요격미사일 패밀리를 만들어내는 공통 아키텍처를 제공한다”고 썼다. 이건 미사일을 소개하는 문장이라기보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플랫폼을 소개하는 문장에 가깝다. 안두릴은 원래 자율무기·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출발했고, 이번에도 하드웨어를 모듈이라는 익숙한 어휘로 포장했다.
둘째, 같은 주에 터진 NGC2 계약과 조선 투자는 우연이 아니라 패턴이다. 미사일 하나로는 눈에 띄기 어렵지만, 지휘통제·조선·요격미사일을 동시에 들고 나오면 안두릴은 국방산업 전반을 빠르게 재편하는 회사라는 인상을 심을 수 있다. 이란전으로 재고가 비어버린 지금, 이 인상 자체가 협상력이 된다.
내 판단이 틀렸다면, 그건 2027년 비행시험에서 스틸핀이 실제로 PAC-3 MSE 성능의 80%를 입증하고, 퓨처 인터셉터 프로그램이나 저비용 요격미사일 프로그램에 공식 선정되는 경우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 공개는 홍보전이 아니라 진짜 공급망 재편의 시작점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숫자보다 타이밍이 더 많은 걸 말해준다.
지켜볼 것
- 미 육군의 퓨처 인터셉터·저비용 요격미사일 프로그램 공식 선정 결과가 2026년 말~2027년 나온다 — 스틸핀이 마케팅을 넘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지를 가를 분기점이다.
- 스틸핀 첫 비행시험과 실제 요격 성공 여부가 2027년 확인된다 — 80% 성능이라는 숫자가 사격장에서도 유지되는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 록히드 PAC-3 엣지와 안두릴 스틸핀의 실제 단가·성능 비교 데이터가 2027~2028년 공개된다 — 지금의 목표치가 진짜 가격표로 바뀌는 순간이다.
자주 묻는 질문
스틸핀은 지금 실전 배치됐나?
아니다. 안두릴은 대표 비행체를 이용한 탄도시험만 완료했고, 변형별 비행시험은 2027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완전 양산 목표 시점은 2028년 말 또는 2029년 초다.
스틸핀 가격은 확정된 수치인가?
아니다. PAC-3 MSE 가격의 3분의 1, PAC-3 MSE 성능의 80%를 절반 미만 가격에 같은 수치는 모두 안두릴이 제시한 목표치이며, 각 변형별 정확한 단가는 공개되지 않았다.
안두릴이 미 육군의 공식 프로그램에 선정됐나?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안두릴은 xTech Apex Intercept 경연을 통과했지만, 퓨처 인터셉터 프로그램이나 저비용 요격미사일 프로그램에 스틸핀이 공식 선정됐는지에 대해서는 경영진이 논평을 거부했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인 계약이나 전력 변화는 없다. 한국은 패트리엇과 L-SAM 등 요격체계를 운용하는 나라로, 저비용 대량생산이라는 흐름은 장기적으로 수출 경쟁 구도에서 참고점이 될 수 있는 정도다.
대표 사진 — 미 해군 · Photographer’s Mate Airman Adam York
미국 연방정부 저작물(퍼블릭 도메인)입니다. 미 국방부 시각자료의 사용이 국방부의 보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