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는 실재한다, 그러나
“레이저는 실재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나가서 표적을 맞힐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병사들이 필요할 때 믿을 수 있을 만큼 이 시스템들을 신뢰성 있게 만드는 것이다.” 미 육군 지향에너지사업실 수석엔지니어 커크 윌리엄스(Kirk Williams)가 지난달 워싱턴DC에서 한 말이다. 신무기를 자랑하러 나온 자리에서, 아직 못 믿겠다는 고백부터 터져나온 셈이다.
2026년 10월 12일 미육군협회(AUSA) 연례총회 패널에서 미 육군은 특정 차량에 묶이지 않는 모듈형 지속형 고에너지 레이저(E-HEL)를 공개했다. 방어화력 역량프로그램총괄 가이 옐버턴(Guy Yelverton) 준장은 “우리는 ‘모터풀의 어떤 차량이든’ 탑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에너지 레이저의 미래 역량을 거기에 통합하려 한다”고 말했다. 중심에는 에어로바이런먼트(AeroVironment)의 30킬로와트(kW)급 로커스트 X3(LOCUST X3)가 있다. 한 달 전인 9월 2일 이 회사는 4억 6,480만 달러 규모의 최초 양산계약을 따냈다.
화려한 숫자지만 이 발표를 둘러싼 공기는 축포보다 변명에 가깝다. 미 육군은 불과 몇 달 전에도 레이저 프로그램 하나를 땅에 묻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번 E-HEL(30kW, 대드론용)은 골든돔이 추진하는 150~300kW급 합동 레이저무기체계(JLWS)와는 체급 자체가 다른, 훨씬 작고 값싼 프로그램이다.
모듈화라는 이름의 리스크 분산
겉으로 보이는 것은 ‘어떤 차량에도 올릴 수 있는 레이저’라는 설계 혁신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다르다. 2022년 재활성화된 4-60 방공포병대대가 운용하던 기동식 단거리방공 지향에너지체계(DE M-SHORAD, 50kW급)는 열 발산과 신뢰성 문제로 사실상 좌초해, 해당 부대가 전통적 방공 임무로 돌아갔다. 특정 스트라이커 한 대가 정비에 들어가면 레이저 전력 자체가 통째로 묶이던 구조였다. 올해 3월에는 300kW급 간접사격방호능력-고에너지레이저(IFPC-HEL)마저 실전 인도도 못 해보고 포기됐고, 교훈만 JLWS로 넘겨졌다.
두 차례 연속 매장 끝에 나온 게 탈착식 ‘슬레드’ 구조다. 모듈화는 혁신이 아니라 손절매 구조다. 레이저가 또 실패해도 차량 한 대만 버리면 되게 설계를 바꾼 것이지, 레이저 자체의 열관리·출력 안정성 문제가 풀렸다는 증거는 아직 어디에도 없다. 윌리엄스 수석엔지니어의 발언이 그 증거다.
회사의 보도자료가 말한 '사상 최초'
겉으로 보이는 것은 ‘미국 최초의 지향에너지 양산계약’이라는 에어로바이런먼트의 자평이다. 실제로는 이 표현의 출처가 회사의 9월 2일 자체 발표뿐이고, 제3자가 검증한 적은 없다. 로커스트 초기형(팔레트형·합동경전술차량(JLTV)·보병분대차량(ISV) 탑재형)은 이미 미-멕시코 국경에서 운용 중이지만, 정작 몇 건의 실제 표적을 맞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윌리엄스 수석엔지니어는 이 부분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첫 생산 유닛을 시험·훈련용으로 빼두고 싶지만, 현재 환경상 우리가 생산하는 유능한 대드론 시스템은 결국 어딘가에 실전 배치되곤 한다.” 시험 데이터를 쌓을 여유도 없이 실전에 먼저 내보낸다는 뜻이다. 신뢰성을 검증하기도 전에 현장 투입이 반복되는 구조에서, ‘사상 최초’라는 타이틀은 화려하지만 숫자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26대, 4억 6,480만 달러 — 놀랄 일 없는 숫자
AUSA 발표 다음 날 터진 ’26대·4억 6,480만 달러’라는 숫자는 깜짝 조달처럼 보도됐다. 그러나 미 육군 2027회계연도 예산문서는 이미 2027년 2대, 이후 약 24대 추가라는 규모를 예고해뒀다. 더하면 26대다. 이번 계약은 비전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예산 절차가 예정대로 집행된 결과에 가깝다. AUSA라는 무대 위에서 포장만 새로 입혔을 뿐이다.
비용 셈법도 흥미롭다. 로커스트의 교전 비용은 발당 5달러 미만으로 추정되고, 천광은 1회 발사에 약 2,000원이 든다. 둘 다 미사일 요격 대비 탄약 소모를 줄이겠다는 같은 논리를 편다. 다만 두 숫자 모두 제3자가 독립적으로 환산·검증한 수치는 아니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천광은 이미 2년 전 전쟁터에 있었다
한화시스템과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천광(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은 2024년 말 전력화됐다.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레이저 대공무기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2026년 10월 14일 ‘아미 타이거 플러스’ 훈련에서는 천광과 30kW급 전투차량 탑재형 고에너지 레이저포가 드론 3대를 100% 요격했다. 미 육군이 E-HEL로 좇는 ‘모듈형·차량탑재형’ 콘셉트와 방향은 거의 같다.
차이는 일정표다. 로커스트 X3는 2027회계연도 4분기 첫 납품, 실전 배치는 이르면 2027년 말에서 2028년 봄 사이를 목표로 한다. 천광은 이미 2024년 말 전력화를 마쳤다. 2년 안팎의 간격이다. 한화시스템은 50kW급 레이저 장갑차도 개발 중이며, 이를 발판 삼아 해외시장 공략을 공식화했다. 미 육군의 자체 수요가 이미 에어로바이런먼트로 넘어간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노려야 할 시장은 미국 정부 조달이 아니라 제3국 수출 쪽에 가깝다.
다만 반론도 있다. 천광은 고정식 운용이 중심이라는 지적이 꾸준하고, 진짜 기동부대를 따라다니는 차량탑재 운용 검증에서는 JLTV·ISV 탑재는 물론 치누크 슬링로드 이동까지 시험한 로커스트가 오히려 앞서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누가 ‘먼저’인지와 누가 ‘더 쓸모있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미 육군이 노리는 건 성능 증명이 아니라 책임 분산이다
나는 이번 발표를 레이저 기술의 진전보다는 실패 비용을 줄이는 조달 전략으로 읽는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숫자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 26대·4억 6,480만 달러는 이미 예산문서에 적혀 있던 규모였고, AUSA 패널은 그 위에 '비전'이라는 포장지를 씌운 자리였을 뿐이다. 둘째, 같은 패턴이 세 번째 반복되고 있다. DE M-SHORAD, IFPC-HEL이 차례로 묻힌 뒤 나온 게 E-HEL이고, 그 설계 철학조차 ‘레이저가 또 실패해도 차량 전체는 멀쩡하게 두자’는 보험에 가깝다.
내 판단이 틀렸다면, 그건 2027회계연도 4분기 첫 납품 이후 실제 다종차량 통합시험에서 열관리·신뢰성 수치가 공개되고, DE M-SHORAD 때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일 것이다. 지금은 그 증거가 없다.
지켜볼 세 가지 신호
- 로커스트 X3 첫 인도와 JLTV 통합 시험 결과 — 2027회계연도 4분기, 모듈화 설계가 실전에서도 작동하는지 가늠하는 첫 데이터가 나온다.
- 수령 부대 지정 여부 — 2026년 말에서 2027년 초, 어느 부대가 먼저 받느냐에 따라 전력화 속도가 가시화된다.
- 한화시스템 50kW급 레이저 장갑차 개발 완료 및 수출계약 — 2027년까지가 목표로, 성사되면 한국 레이저 방산의 수출 시장이 실제로 열리는지 확인된다.
대표 사진 — 미 육군
미국 연방정부 저작물(퍼블릭 도메인)입니다. 미 국방부 시각자료의 사용이 국방부의 보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