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초입의 대문을 지나 강당과 사당을 만나는 길, 몇 번이나 자리를 바꾼 서원의 시간이 조용히 말을 걸어옵니다.
1782년 왕명으로 세워진 용계서원은 서원 철폐령과 영천댐 건설을 거쳐 1976년 현재 자리로 옮겨온 곳입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원각마을 초입에 자리한 이 서원은 조선시대 지역 유학자와 향현을 추모하고 제향하던 역사 유적입니다. 이름난 대형 관광지처럼 이것저것 펼쳐 놓기보다 강당과 사당,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인물사를 차분히 보여 주는 곳이어서 오히려 이야기가 선명해요.
대문을 지나면 공부와 제향의 공간이 이어집니다
용계서원은 3칸 대문채를 지나 강당을 만나고, 강당 뒤 사주문을 통해 사당으로 들어가는 배치입니다. 먼저 사람을 맞는 문을 지나 공부와 강론의 공간을 보고, 다시 안쪽의 사당으로 향하는 흐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강당은 정면 4칸·측면 3칸의 누각식 팔작집이며, 사당은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건물 이름을 외우기보다 강당은 배우는 자리, 사당은 기리는 자리로 나누어 보면 아이와 함께여도 서원의 기능이 쉽게 잡힙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는 이곳을 생육신 이맹전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설명합니다. 한편 정읍시 문화관광 자료에는 1701년 향현사 서원으로 창건해 최서림을 향사한 뒤 여러 인물을 추가로 배향한 내력이 담겨 있어, 용계서원은 한 사람의 이름만으로 끝나지 않는 지역 인물사의 공간입니다.
용계서원의 시간은 한 번도 한곳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용계서원은 1701년 관곡 최서림을 향사하는 향현사 성격의 서원으로 창건했고, 1750년 김정호와 은정화를, 1757년 한백유·김습·유종흥을 추가로 모셨습니다. 주벽에 모신 최서림은 김집의 문인으로 1662년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고, 1694년 공능참봉에 제수된 뒤에도 나아가지 않고 후진 교육에 힘썼습니다.
1868년 정부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으나 1910년에 다시 세워졌고, 영천댐 건설 공사 뒤 1976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서원이 한 자리에 고정된 건물이라는 생각을 잠깐 내려놓게 하는 이력이지요. 장소가 옮겨도 기리는 이름과 배움의 뜻은 이어졌습니다.
무성서원과는 닮았지만 중심에 선 이름이 다릅니다
무성서원, 필암서원, 돈암서원도 지역 유학자를 제향하고 교육 기능을 수행한 서원이라는 점에서 용계서원과 닮았습니다. 다만 무성서원은 정읍시가 대표 경관으로 안내하는 세계유산 관련 서원이고,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중심으로 한 국가유산이며,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과 그 문인들을 중심으로 합니다.

용계서원의 중심에는 최서림과 칠보 지역 향현이 있습니다. 정읍의 도계서원과도 역사 인물을 제향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배향 인물과 건립·복원 이력은 다릅니다. 태인향교가 지방 교육기관이자 공자 제향 공간이라면, 용계서원은 특정 선현들을 모신 서원이라는 차이가 또렷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매력은 규모 경쟁에 있지 않습니다. 큰 이름의 서원을 보고 난 뒤 용계서원에 오면, 한 지역의 유림이 누구를 기억하고 어떤 뜻으로 공간을 세웠는지 더 가까이 살펴보게 됩니다.
부모님과 아이, 혼자 오는 사람 모두에게 말거리가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와 함께라면 강당과 사당을 차례로 둘러보며 1868년에 헐렸다가 1910년에 다시 세워진 역사를 이야기하기 좋습니다. 긴 체험 프로그램 없이도 서원의 기능과 지역 인물의 삶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어요. 부모님과 함께라면 건물 앞에서 서두르지 말고 이름 하나씩 천천히 짚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혼자 또는 소규모로 조용한 산책을 즐기는 여행자에게는 강당과 사당의 배치, 최서림의 교육 활동, 배향 인물의 이름을 차분히 살피는 시간이 어울립니다. 아이와 함께라면 강당과 사당을 구분해 보게 하며 ‘공부하는 공간’과 ‘기리는 공간’의 차이를 설명해 주세요. 건물 두 채가 역사 수업의 칠판이 되어 줍니다.
이름을 따라 읽으면 답사가 조금 더 재미있어집니다
혼자 방문한다면 대문채에서 강당, 사주문, 사당 순서로 건물의 역할을 정리해 보세요. 최서림·김정호·은정화·한백유·김습·유종흥의 이름을 차례로 살피면 용계서원이 누구를 기억하는 공간인지 흐름이 잡힙니다.
친구와 함께라면 과거와 관직보다 후진 교육을 택한 최서림의 이력을 읽고, 서원이 지역사회에서 맡았던 교육과 제향의 기능을 주제로 짧은 답사 대화를 나눠 보세요. 사진을 좋아하신다면 서원 입구와 강당·사당의 배치가 함께 드러나도록 기록하고, 정면 4칸·측면 3칸 강당의 누각식 팔작집과 사당의 홑처마 맞배지붕을 서로 다른 주제로 담아 보셔도 좋겠습니다.
정읍의 유교 문화유산을 함께 살피는 일정이라면 용계서원에서 지역 향현의 제향 전통을 본 뒤 무성서원으로 이동해 두 서원의 중심 인물과 성격을 비교해 보세요. 10월에는 용계서원 답사 뒤 정읍시가 안내하는 내장산 가을 단풍길을 연계할 수 있어, 하루의 앞뒤가 역사와 자연으로 나뉘는 구성도 가능합니다.
서원만 보고 돌아서기 아쉬울 때의 정읍 코스입니다
무성서원은 용계서원과 함께 정읍의 서원과 선비 문화를 비교하기 좋은 곳입니다. 김명관 고택에서는 서원과 다른 형태의 조선시대 유교·주거 문화를 살펴볼 수 있고, 피향정에서는 지역 전통 건축과 누정 문화를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칠보면의 칠보물테마유원지는 서원 답사 뒤 물과 휴식 중심의 공간을 연계하기 좋고, 칠보산은 역사 유적과 지역 자연 풍경을 함께 살피는 방향을 열어 줍니다. 10월 일정이라면 계절 프로그램을 기대하기보다 용계서원의 건축과 인물사를 먼저 보고, 정읍의 가을 경관을 뒤에 붙이는 편이 알맞습니다.
주소와 주차는 간단하게 기억하시면 됩니다
용계서원 주소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동편길 41-3입니다. 자가용은 내비게이션에 이 주소를 입력해 이동하면 됩니다.
주차가 가능하며 요금은 무료입니다. 대중교통으로는 정읍시 농어촌버스가 운행되는 칠보정류소·칠보 보건지소 일대까지 이동할 수 있지만, 서원 바로 앞까지의 정확한 도보 동선과 환승 방법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무료로 상시 열려 있지만 공간의 성격은 조용합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이용 시간은 상시 개방, 쉬는 날은 연중무휴입니다. 예약 관련 안내를 따로 붙이기보다 개방된 역사 유적의 성격에 맞춰 강당과 사당을 살피는 장소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출입구에 단차가 있고 장애인 화장실·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지하철과 저상버스로 접근할 수 없으며 휠체어 대여와 유모차 대여 시설도 없습니다. 문의는 063-539-5184입니다.
용계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동편길 41-3으로 자가용 이동이 편하고, 10월에는 단차와 건물 배치를 염두에 두고 편한 차림으로 강당과 사당을 차분히 살펴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