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직 논란처럼 법과 관행의 회색지대에 있는 사안일수록, 정치권 스스로 국민 신뢰를 담보하는 기준을 먼저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신속하게 판단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여론이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방치했다가, 당사자의 ‘결단’이라는 형식을 빌려 뒤늦게 봉합하는 패턴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 쟁점이 드러난다.
인사권자가 여론의 압도적 신호를 확인하고도 왜 스스로 철회하지 않고, 당사자가 알아서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방식을 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순서는 결코 사소한 절차 문제가 아니다.
지명권자가 먼저 철회하면 그건 인사권자 스스로 판단 오류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
반면 당사자가 자진 사퇴하면, 인사권자는 “국민 뜻을 끝까지 존중하려 인사청문회 기회를 주려 했다”는 명분을 챙기면서도 정작 자신의 지명 판단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결과적으로 국민이 이미 던진 신호를 가장 늦게, 가장 소극적인 형태로만 받아들인 셈이다. 이재명 정부가 이번 개각에서 처음 낙마자를 낸 사례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 지연이 조직적 판단 오류라기보다는 인사권 행사 방식 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사례로 봐야 한다.
권력을 쥔 쪽이 여론보다 자신이 이미 내린 결정의 권위를 우선시할 때, 그 결과는 결국 국민이 아니라 정치권의 체면을 먼저 지키는 의사결정으로 흐른다.
이번 사태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보여준 태도가 정확히 그 패턴이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대통령이 소수정당인 기본소득당 현역 의원을 국무위원 후보로 발탁한 배경에는 범진보 진영의 연대라는 정치적 셈법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맥락에서 보면, 청와대가 곧바로 지명을 철회하지 않고 인사청문회 절차를 끝까지 밟도록 시간을 준 것은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소수정당과의 연대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실제로 겸직 자체는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게 후보자 측 입장이었고, 인사청문회 파행의 책임을 두고도 여야가 증인 채택 문제로 계속 공방을 벌였던 만큼, 사퇴가 늦어진 원인을 청와대의 소극적 태도 하나로만 돌리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지명 이후 여론조사에서 ‘부적합’ 응답이 과반을 넘었다.
여당 지지층 안에서도 부적합 여론이 우세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정치 컨설턴트들은 이미 지명 발표 직후부터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임명을 강행하는 것보다 국민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 인사가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청와대가 굳이 인사청문회까지 끌고 가지 않아도 이미 여론조사 숫자로 확인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당 지도부조차 지명 철회나 사퇴를 요청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공은 계속 후보자 본인에게 넘어갔고, 후보자는 겸직을 고수하며 인사청문회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여기서 상황을 실제로 되돌린 건 청와대의 결단이 아니라, 민주당이 뒤늦게 “국민적 공감대가 넓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후보자가 결단해달라”고 요구하면서였다.
그리고 그 요구를 받은 지 사흘 만에 후보자가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8월 30일 지명된 지 정확히 14일 만이다.
겸직 논란, 배우자 급여와 국고보조금을 둘러싼 의혹, 인사청문회 파행 위기까지 거치며 결국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이 과정을 복기해보면 정작 가장 먼저 물었어야 할 질문이 뒤늦게, 그것도 당사자의 결단이라는 형식을 빌려서야 겨우 해소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기회주의 방식으로 국민의 단한표도 얻지 못한자가 국민의 이름을 팔면서 난 다 가질테니 건드리지마를 당연하게 주장하는 자였다.
그렇게 그는 국민의 질타를 여권과 청와대 모두에게 똥칠을 하며 오래토록 버티고 있었으니 시점이 늦어도 많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번 사안에서 남는 질문은 결국 이거다.
인사청문회라는 제도가 국민의 동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라면, 그 결과가 여론조사로 이미 명백해졌을 때 인사권자가 신속하게 반응하는 관행이 왜 정착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겸직 논란처럼 법과 관행의 회색지대에 있는 사안일수록, 정치권 스스로 국민 신뢰를 담보하는 기준을 먼저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신속하게 판단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여론이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방치했다가, 당사자의 ‘결단’이라는 형식을 빌려 뒤늦게 봉합하는 패턴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