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2026년 9월 29일 (화)

LUXDIGEST

아시아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 대만의 특성이 이곳에 있네요. 타이베이 여행의 필수 코스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 대만의 특성이 이곳에 있네요. 타이베이 여행의 필수 코스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 — 과거와 현대가 함께 숨 쉬는 공간

타이베이의 중샤오신성 근처,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낡은 건물들이 밀집한 곳이 있습니다. 멀리서만 봐도 산업 유산의 무게감이 전해지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의 에너지와 만나게 됩니다. 이곳이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Huashan 1914 Creative Park)입니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찾는 문화의 중심지지만,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공간이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알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1914년, 양조장의 탄생

이 건물들은 1914년 일제강점기 시절 ‘방산 제국 주조 공장’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대만 최대 규모의 양조장이었으니, 사케와 과실주를 생산하는 거대한 산업 기계였던 것입니다. 지금 사진에 담긴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 양식—붉은 벽돌의 두꺼운 벽, 규칙적으로 배치된 창문, 중후한 지붕 선—이 그 시대를 말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987년, 공장은 이곳을 떠났고 건물들만 남겨졌습니다. 빈 창문들, 닫힌 문들, 물든 벽벽. 그것이 1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1997년, 예술가들이 이곳을 점거했습니다. 허가나 예고 없이, 그저 “여기에서 뭔가 일어나야 한다”는 신념만 가지고 공연을 열었던 것입니다. 대만 정부는—흥미롭게도—이를 억압하거나 강제 철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가능성을 수용했습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낡은 산업 공간은 현대 문화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한국인인 제게 이 선택은 처음엔 낯설었습니다. 우리가 조선총독부를 폭파했던 자존심을 생각하면, 역사의 상처를 보존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개념이 쉽게 와닿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화산 1914를 직접 경험하며 깨달은 것은, 이것이 “과거를 용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거를 지우지 말고 새롭게 읽자”는 문화적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역사를 숨기기보다 그것을 현재 속에 살려내는 방식—그것도 나름의 강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역별로 만나는 화산 1914의 결

문화 창의 구역: 낡은 골조 속 신선한 호흡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옛 공장 건물의 골조를 완벽하게 유지한 채 내부만 현대식으로 탈바꿈한 공간들입니다. 대만의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 정성 들여 만든 핸드메이드 가죽 제품, 작은 독립 서점들이 이 안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낡은 벽돌과 새로운 상품들의 대비가 묘했습니다. 마치 시간이 두 겹으로 쌓여 있는 느낌이랄까요.

우드풀라이프(Wooderful Life)라는 공간은 특별했습니다. 오르골 제작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인데, 아이들의 웃음이 울려 퍼지는 코너에서는 과거의 무게감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 옆에 앉아 나무 악기를 만드는 순간들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전시 공간: 계절마다 바뀌는 문화의 창

넓은 창고 부지에서는 1년 내내 전시가 열립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팝업 스토어부터 현대 미술, 사진 컬렉션까지—방문 시기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방문했을 때는 한정 기간 캐릭터 전시가 한창이었고, 그 앞에 이어진 줄의 길이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두세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는 열정 말입니다. 방문 전에 공식 홈페이지를 꼭 확인해서, 어떤 전시가 진행 중인지 미리 알아두면 좋습니다.

스팟 화산: 영화광들의 성지

옛 양조장의 거대한 창고를 개조한 이곳은, 여느 영화관과는 다릅니다. 예술 영화와 독립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이곳의 분위기는 마치 영화 박물관을 걷는 것 같습니다. 낡은 목재의 냄새, 영사실의 기계음, 어둠 속에서만 더욱 선명해지는 스크린—모든 것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의 경험을 깊게 만들어줍니다.

사진 작가를 위한, 그리고 모두를 위한 풍경들

화산 1914는 사진가들에게도 성지입니다. 몇 군데를 꼭 기억해두시기를 추천합니다.

담쟁이 붉은 벽돌 벽: 입구에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오면, 붉은 벽돌 건물 전체를 뒤덮은 담쟁이덩굴이 보입니다. 이것이 화산 1914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인데,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빛과 그림자, 벽돌과 초록잎이 만드는 대비가 정말 멋집니다.

거대 굴뚝: 옛 양조 공장의 흔적인 이 굴뚝은 이 공간의 정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말해줍니다. 높이 솟은 굴뚝 앞에 서면, “여기는 한때 거대한 산업의 중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공장 창문과 철제 구조물: 오래된 창틀과 산업 용 철제 계단, 맨살 드러난 빔들—인더스트리얼 감성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이 요소들은 인물 스냅 촬영에도 최고의 배경입니다. 사진만 봐도 “이건 어디?”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있습니다.

야외 광장과 공원도 매력적입니다. 주말이면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됩니다. 버스커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플리마켓 상인들의 손길이 바빠집니다. 현지 젊은이들이 잔디 위에 앉아 피크닉을 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에서 타이베이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보게 됩니다.

미식과 휴식: 카페와 맛집

FabCafe는 정말 독특한 컨셉의 카페입니다. 레이저 커터 같은 디지털 제작 도구들을 갖추고 있어서, 커피를 마시며 창의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창의인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Alleycat’s Pizza는 화덕 피자로 유명한데, 여기서 꼭 경험해볼 만한 것은 음식만이 아닙니다. 옛 건물의 거친 질감을 살린 인테리어 덕분에, 맥주 한 잔을 들었을 때의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한 테이블 위에서 만나는 느낌입니다.

방문 전 체크리스트

교통: MRT 중샤오신성역 1번 출구에서 직진하면 바로 보입니다. 길을 잃을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합니다.

운영 시간: 야외는 24시간 개방되지만, 상점들은 대부분 오전 11시에 문을 엽니다. 너무 일찍 가면 문 닫힌 건물들만 보게 되니, 늦어도 오전 10시 반쯤에는 도착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방문 시기: 전시나 팝업 스토어는 주말에 대기 줄이 길 수 있으므로, 평일 오전 방문을 강력 추천합니다. 평일 아침은 공간 자체를 천천히,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추가 코스: 도보 10분 거리에 광화상창(Syntrend)이라는 전자상가가 있습니다. 이곳과 함께 방문하면 대만의 전통적인 감성과 최첨단 IT 문화를 하루 만에 모두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한 도시에서 공존하는 타이베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산 1914를 돌아다니며 느낀 것은, 이 공간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건물, 현재의 사람들, 미래의 가능성이 한 곳에서 호흡하는 곳. 한국인인 제게는 조금 신기하고, 조금 낯설었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 건축과 예술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거든요.

타이베이 여행에서 어디를 갈지 고민 중이라면, 화산 1914를 꼭 들러보시기를 권합니다. 아름다운 사진도 남길 수 있고, 좋은 음식도 즐길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김지훈 기자
Facebook X (Twitter) 링크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