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면 맞는다"는 말이 다시 교리가 됐다
워싱턴 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 2026년 10월 12일. 미 육군태평양사령부(U.S. Army Pacific) 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단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적이 당신을 볼 수 있으면 타격할 수 있다. 그리고 반격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사일방어망을 가진 나라의 사성장군이 꺼낸 2026년의 결론이 고작 숨는 법이라는 사실, 이게 이번 미 육군협회(Association of the U.S. Army, AUSA) 연례총회 패널의 진짜 하이라이트다.
숫자가 그 역설을 설명한다. 미 의회예산국(Congressional Budget Office, CBO)은 2026년 9월, 이란과의 충돌로 패트리엇·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SM-3·SM-6요격미사일(Standard Missile-3/Standard Missile-6) 재고의 2분의 1~3분의 2가 소진됐다고 추산했다. 이를 되채우는 데 드는 돈이 217억 달러, 걸리는 시간이 최소 5년이다. 돈과 시간이 모자라면 남는 건 기술이 아니라 기술 이전의 기본기, 즉 위장과 기동이다.
이날 패널 ‘결정적 지상전력’ 세션에서는 클라크와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 대장이 나란히 발언했다. 요지는 세 가지다. 우크라이나·이란전의 교훈을 태평양·한반도 작전에 어떻게 접목할지, 북한군이 러시아 파병으로 얼마나 숙련됐는지, 그리고 한미연합훈련을 제주부터 경기도까지 한반도 전역으로 분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세 번째 대목에 집중했다. 필자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사이의 틈에 더 눈이 간다.
위장은 전술이 아니라 회계 문제다
클라크는 패널에서 “구체적으로 나는 기동성과 위장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우크라이나 참호전과 이란전 방공전의 전훈을 흡수한 교리 혁신처럼 들린다. 그런데 같은 시기 발표된 CBO 보고서를 겹쳐 보면 결이 달라진다. 패트리엇·사드급 요격탄을 5년 안에 재건할 수 없다면, 그사이 병력과 장비를 지키는 가장 값싼 방법은 숨기는 것뿐이다. 레이더에 안 걸리면 요격탄을 쏠 필요도 없다.
방산업계는 이미 이 틈새에서 움직이고 있다. 록히드마틴 등은 패트리엇 PAC-3 MSE(Patriot PAC-3 MSE)의 연간 생산량을 600발에서 2000발 수준으로 늘리는 계약을 추진 중이다. 생산이 정상화될 때까지 수년, 그 공백을 메우는 건 결국 위장망과 기만 기동이라는 2차 대전식 해법이다. 태평양 전구의 육군 수송함 전력이 2018년 134척에서 2024년 약 70척으로 줄고 가동률도 2020년 70%대에서 2024년 40%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사실도 같은 그림의 일부다. 최신 교리를 떠받칠 장비 자체가 줄고 있다. 클라크 본인도 선을 그었다. 유럽과 중동은 “대등한 수준의 적”이 아니지만 태평양은 그렇다고. 뒤집어 말하면 ‘대등하지 않은 적’에게서 배운 숨는 법이, ‘대등한 적’ 중국에게는 얼마나 통할지 아무도 검증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분산훈련,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엇갈린다
한국 언론 대부분은 "제주부터 경기도까지" 분산훈련 구상을 브런슨 대장의 발언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미국 군사전문매체 TWZ 원문은 같은 내용을 클라크 대장의 발언으로 인용한다. 누가 실제로 이 구상을 주도하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다.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이면 한반도 훈련 체계 변경이고, 태평양사령관의 발언이면 지역 전체 작전 구상의 일부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 눈에 띄는 건 따로 있다. 영어권 보도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한국 군 당국은 이 발언이 나온 직후 “기존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FS)·을지 자유의 방패(Ulchi Freedom Shield, UFS) 축소가 아니라 추가 분산훈련”이라고 서둘러 해명했다.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해명부터 나왔다는 건, 이 발언이 어떤 맥락과 충돌할지 당국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제주에서 경기도까지, 그러나 숫자는 그대로다
2026년 8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이란 관련 군사행동 동참을 거절한 점 등을 이유로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국방장관에게 지시했다. 그 하루 뒤인 8월 17일 을지 자유의 방패는 계획대로 시작됐고 한국군 약 1만8000명이 참가했다. 축소 지시와 정상 시행이 하루 간격으로 공존한 셈이다. 두 달 뒤 브런슨의 ‘분산훈련’ 발언이 나오자, 이걸 8월의 축소 지시와 연결 짓는 해석이 바로 나왔다. 한국 군 당국은 “연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 발언과 트럼프 지시 사이의 실제 정책적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같은 패널에서 브런슨은 “그들은 지금 결탁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어딘가에 갈 때 좀처럼 혼자 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서 배웠다”며 러시아·북한·중국의 밀착을 지적했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파병으로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무기체계 개발과 전술 습득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평가도 내놨다. 1953년 정전 이후 처음으로 북한군이 실전을 치렀다는 사실은, 어느 쪽이 먼저 발언했는지 따지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문제다. 다만 이 무거운 사실이 동시에 ‘분산훈련은 북한 대응 차원’이라는 설명의 근거로도 쓰이고 있다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교훈'이라는 말은 트럼프의 지시를 가리는 방패다
필자는 이번 패널 발언의 핵심이 위장 전술이나 북한 실전 경험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감한 훈련 축소 논쟁을 군사적 합리성의 언어로 바꿔치기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트럼프의 훈련 축소 지시는 8월 16일에 이미 존재했다. 둘째, 브런슨의 분산훈련 발언이 나오자마자 한국 군 당국이 즉각 “축소가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 발언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를 당국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북한의 실전 경험 대응이라는 군사적 설명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 설명이 같은 시기의 정치적 결정을 가려주는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 판단이 틀렸다면, 그건 분산훈련 구상이 트럼프의 지시와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독립적으로 추진돼온 작전 개념이거나, 한국 합참의 해명대로 정말 기존 훈련에 더하는 순수한 ‘추가’일 뿐이고 둘 사이에 아무 정책적 연결고리가 없는 경우일 것이다. 그 경우라면 이번 논쟁은 매체마다 발언자를 다르게 보도한 혼선이 만든 소동에 가깝다.
지켜볼 것
- 합동참모본부의 공식 설명자료: 2026년 10월 중 발표 예정이며, 분산훈련과 트럼프 지시 사이의 연관성을 당국이 어떻게 선 긋는지 확인할 수 있다.
- 2027년 자유의 방패·을지 자유의 방패 실제 규모: 2027년 초부터 8월 사이 발표될 일정과 참가 병력 규모가 ‘추가냐 축소냐’ 논쟁의 사실상 답이 된다.
- 패트리엇 PAC-3 MSE 생산 확대 진척: 연간 600발에서 2000발로 늘리는 계획이 2027~2028년 사이 실제로 달성되는지가 위장·기동 의존이 일시적인지 구조적인지를 가른다.
대표 사진 — 미 육군 · Pfc
본문 사진 — 미 육군 · Sgt
미국 연방정부 저작물(퍼블릭 도메인)입니다. 미 국방부 시각자료의 사용이 국방부의 보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